보통 사람인 나도 텐 베거 심사역이 될 수 있을까? [VC 투자 단상]
1) 어떤 투자가 현명한 투자인지 2) 창업팀의 실패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지 3) 아싸 심사역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이번 글에서는 제가 평소에 메모장에 두서없이 적어 놨던 생각들을 쭉 엮어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트위터에나 올릴 만한 짧은 글들이지만 탈 트위터(X)가 대세인 듯 하여 블로그에 적기로 하였습니다.
[1] Circle of Competence
작년 말부터 금융 시장이 얼어 붙으면서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회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VC 투자가 이뤄지는 단계에서 영업이익을 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지난 3~5년 VC 투자가 집중 됐던 바이오/플랫폼 업종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인건비가 들어가는 바이오 업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일단 고객을 모으기 위해 선제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해야 하는 플랫폼 업종도 단기간 내 영업이익 흑자를 내긴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따라 VC 의 관심도 바이오/플랫폼 산업에서 소부장과 같은 전통 산업으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산업에 투자하느냐에 관한 내용은 아닙니다. 쿠팡의 성공에 혹하여 넥스트 쿠팡을 찾겠다며 우르르 몰려갔다가 두나무의 잭팟에 눈이 멀어 또 다른 코인 거래소를 찾아다니며 갈팡질팡 하는 철새와 같은 투자를 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오를대로 오른 밸류를 따라가며 투자하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먼저 예측하여 미리 투자를 해 놓으면 되는 걸까요? 그런데 우리는 미래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지며 의미가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업을 실제로 영위하는 창업팀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어려운 작업이죠.
우리가 투자자로서 해야 할 일은 시류에 편승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 범위(Circle of competence) 안에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영역 안에 있는 회사에 투자를 한다면 이 회사의 장기 전망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과 이에 따르는 적정한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산업은 당연히 바뀔 수 있습니다. 배터리에 투자했다가도 다음 번에는 로봇에 투자할 수 있죠. 다만, 어떤 산업에 투자를 하더라도 본인만의 투자 철학과 영역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부화뇌동 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2] 실패에 대한 수용성
<벤처 투자는 올바른 자본 배치일까?>에서 이 내용에 대해서 일부 다뤘으니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타트업에 투입된 투자금은 다 사라지게 되고 이때 VC는 이 투자 건이 망했다고 판단하고 투자금 전액을 감액 처리 하게 됩니다. 저는 VC라는 업이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점에서 VC가 온전히 투자업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씀드려왔습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복리의 마법을 누려야 하며 그 과정에서 0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벤처 투자는 너무도 많은 0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VC는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을 찾아 이들을 보육하고 거시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가져오는 데 기여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공공성이 가미되어 있고 투자 수익 관점에서만 +, -를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체된 성장 곡선에 반등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을 발굴하고 그 안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여러 창업팀에 자금을 투입하고 그 중에서 살아남은 1등이 더욱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VC의 본질 아닐까요?
우리의 투자금은 0원이 되었지만 자금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생태계가 조성되고 발전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도 있었지만 더 큰 +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보면 민간자본의 비중이 크게 늘어날 수 없기에 정책자금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방향으로 투입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 글 [1]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될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으로도 이어질 수 있겠네요.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너무 실패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창업팀은 망했을지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무형의 지식 자산들은 사회에 계속 축적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다음 도전은 더 위대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요?
[3] 내향인으로 살아가는 VC 심사역의 고충
저번 글 <K-VC의 사후관리 방법>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VC의 투자 건들은 클럽 딜 형태로 진행됩니다. 최대한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비교해서 그 중 최고의 회사에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된 심사역끼리 딜을 공유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투자에 대해 저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는데 제가 클럽딜을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제가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끄럼 많고 낯을 많이 가리는 제 성격 탓에 네트워킹 모임에 나가봐야지 마음을 먹어도 막상 그 날이 오면 아침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집에 가고만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심사역이라는 직업이 안 맞는 걸까요?
지난 글들에서 심사역이라는 직업은 투자자의 커리어로 볼 수 없다고 말씀드렸고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벤처 투자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언젠가는 제 스스로를 떳떳하게 투자자라고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심사역은 좋은 회사를 찾아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굳이 외부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좋은 회사를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열심히 연구 중입니다. 이 부분은 영업 비밀이니 아쉽게도 공개적인 글에서는 알려드릴 수 없겠네요.
[4] 마무리하며
평소 투자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종종 이런 식으로 짧은 글들을 몇 개 엮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