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게임은 메타버스가 될 수 있을까?” 블록체인 메타버스 구현에 대한 인공지능적 상상력
메타버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블록체인 업계가 보는 메타버스는 분명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구현된 게임의 형태일 것입니다. 상호운용성을 갖춘 블록체인 게임 구현에 인공�
본 포스트는 디지털애셋의 멤버십 컨텐츠 디애셋프로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메타버스는 무엇인가요?
적어도 투자 업계에서는 메타버스에 대한 논조가 많이 차분해진 것 같습니다. 21년 말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을 바꾸며 가상현실에 대한 사뭇 진지한 사업 계획을 밝혔고, IT 업계를 중심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기술과 사업 개발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넥스트 스마트폰(Next Smartphone)'을 찾고 있던 VC들은 메타버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업 기회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짧은 기간 동안 꽤 많은 투자금이 업계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달이 지난 지금, 우리 옆에 남아있는 것은 고작 ‘메타버스 서울' 뿐인 기분이 듭니다. 가상보다는 현실이,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해진 지금, 사람들은 당장의 높아진 이자를 부담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현실세계에 집중하고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인프라와 서비스가 디지털화 되고 인터넷이 창출해내는 부가가치가 증가하는 불가피한 흐름에서, 지금은 메타버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리고 곧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르는) 거대 온라인 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한 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메타버스에 대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제 생각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가상세계보다는 확장성과 연결성
메타버스라 하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을 많이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지구에서 살아가는 영화 속 이들은 VR 고글을 쓰고 3D로 구현된 가상세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게임이라기엔 지나치게 크고 현실적인, 메타버스라는 단어 그 자체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여러 연결된 세계를 오가며 실제처럼 걷고, 뛰고, 돈을 벌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가죠.
영화에서처럼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요소는 얼핏 단순해보입니다. 가상세계에 접속하기 위한 하드웨어, 그리고 가상현실 그 자체인 소프트웨어이죠.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VR/AR 기기와 3D 컨텐츠 시장이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뭐가 됐든 눈 앞에 디스플레이를 씌우고 현실감 있는 그래픽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다만 우리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투자 검토 시 신기술의 구현과 상용화를 가능한 보수적으로 산정하는 편입니다.) 현실감 있는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것도 사람들의 기대보다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오큘러스 퀘스트나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를 사용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직까진 이러한 기기들이 현실의 무언가를 대체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는 않습니다.
메타버스를 눈에 보이는 가상세계와 접목하여 연관짓지 않았던 이유도 이것입니다. 메타버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가상세계라는 개념보다는 온라인 서비스의 확장성과 연결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해 왔었죠.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는지보다는 현실 세계처럼 다양한 주체가 여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자율적인 플랫폼 또는 프로토콜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프로토콜 경제를 주장하는 블록체인 업계의 생각과 닮은 점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메타버스 = 블록체인 게임?
블록체인 위에서 구현된 게임이 메타버스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습니다. 프로토콜에 따라 발행된 다양한 디지털 자산들이 특정 게임이나 앱에 구애 받지 않고 활용될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캐릭터가 (각종 아이템을 들고 다니며) 여러 게임과 서비스를 옮겨다니는, 레이 플레이어 원의 메타버스와 같은 사용자 경험이 구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게임 상에서 모든 아이템들은 NFT로 발행됩니다. NFT는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블록체인 위에서 개발된 모든 게임과 서비스에서 자유롭게 활용이 가능합니다. NFT에 이미지나 스탯 같은 기본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면 어떤 게임에서든 해당 아이템이 구현될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선 NFT가 들어있는 개인지갑의 연동만으로 하나의 아이템을 여러 개의 서비스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퍼블릭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아이템을 다양한 서비스에 호환하여 메타버스의 초기 형태를 만들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 게임 업계에서는 하나의 아이템을 여러 개의 게임에 호환하는, 이른바 게임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구현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국내에서는 2019년 블록체인 게임 회사 ‘플레이댑’이 NFT로 아이템을 발행하고 해당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는 2개의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죠.
상호운용성은 허상?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상호운용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구현되기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게임 안에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만 개의 아이템이 존재하는데요. 게임 아이템은 기획부터 그래픽 구현까지 매 단계 사람이 개입하여 만들어집니다. 하나의 아이템을 여러 개의 게임에서 구현하고 싶다면 게임의 갯수만큼 수작업이 요구된다는 이야이기입니다. 1,000개의 아이템을 10개의 게임에 호환하고 싶다면 1,000x10=10,000회의 작업이 필요하겠죠.
결국 상호운용성에는 게임 세계관에 맞는 세밀한 기획이 가능한지의 논의는 차치하고서도, 구현과 연동에만 그래픽을 만들고 코드를 짜는 반복적인 노동이 끊임 없이 요구됩니다. 그 외에도 개발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시스템 상에서 무언가를 호환한다는 일은 개념 자체가 무척 까다롭고 오랜 유지보수 작업이 수반됩니다. 아직까지는 누구도 이러한 문제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듯 보입니다.
상호운용성의 구현에 대한 인공지능적 상상력
앞서 언급한 문제 때문에 게임 간 상호운용성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2-3개 앱을 연결하는 수준의 단발성 프로젝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생성AI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결과물들을 보며 블록체인 게임 간 연결성을 구축하는 난제에도 희망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직접 사용해본 경험은 없더라도 그림을 그려주는 AI가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21년 초 OpenAI가 출시한 달리(Dall-E)부터 몇 달전 출시된 Stability AI의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까지, 인공지능 모델의 발전과 함께 결과물의 질적 개선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당 모델들을 기초로 특정 작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추가 학습을 하는 파인 튜닝(Fine tuning) 기술이 도입되며 실제 적용처에서의 활용성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입력(Input)을 더욱 정교하게 줄 수 있도록 돕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Prompt Engineering) 또한 발전하며 비전문가에 대한 진입장벽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성AI를 블록체인 게임에 도입한다면 상호운용성 구현을 위한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작업들을 자동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템의 설명서의 역할을 하는 입력 프롬프트를 NFT에 기록하여 발행하고, 게임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동으로 NFT에 담긴 프롬프트를 그래픽으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개발사는 게임의 분위기와 그래픽 특징(ex. 중세 배경, 실사화)에 맞게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모델을 파인 튜닝한 모델을 개발
게임이 아이템(NFT) 호환 요청을 받으면 토큰에 기록된 설명서를 적합한 프롬프트로 변환하고 모델은 프롬프트를 읽어 최종적인 그래픽을 구현함
아이템의 시스템 연동을 위한 코드 구현에는 ChatGPT 등의 언어 생성 인공지능 모델이 활용됨. 아이템의 동작, 속성 등을 코드 레벨로 구현함
남아있는 숙제
눈으로 보이는 그래픽을 구현하고 게임 상에 동작시키는 것은 상호운용성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확장성 있는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적인 요소 외에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게임 아이템은 특정한 컨셉과 스토리라인 상에서 기획됩니다. 게임 간 아이템이 넘나드는 것은 언뜻 재밌어보이나 기획 의도와 사용자의 몰입도를 해칠 수도 있습니다.
타사의 게임을 우리 게임과 호환시키는 것은 이전에 없던 개발 흐름입니다. 호환 대상이 완벽히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게임일 경우 타사 정책에 우리 게임이 종속될 수 있는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구심점이 되어줄 킬러(Killer) 블록체인 게임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게임에 우리 게임을 호환하고자 하는 개발사는 없습니다.
단번에 모든 주체가 연결과 확장을 지향하는 이상적인 개발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게임사 본인들이 가진 IP를 활용하여 상호 연결성을 가진 게임 몇 개를 시장에 내놓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넷마블의 마브렉스, 카카오게임즈의 보라, 컴투스의 엑스플라를 비롯해 많은 국내 게임사들은 자체 블록체인 메인넷을 런칭하여 게임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사용하기 보단, 코인 판매와 거래수수료 수취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죠. 다만 적어도 일부 게임사들의 대외적인 행보에서는 상호운용성이 염두되고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투기와 폰지로 얼룩진 블록체인 게임 업계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상호운용성이든 무엇이든 이전과 차별적인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만들어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마무리하며
최근 블록체인 업계로 막대한 자금 규모의 VC 투자금이 흘러들어갔습니다. 글로벌 주요 테크 VC들의 통계를 보면 테라 사태 이후인 3Q22에도 900M 달러에 육박하는 투자금이 웹3/Defi 섹터에 집행되었고, 이는 전통적으로 많은 투자가 몰리는 바이오 테크나 핀테크 분야의 투자금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블록체인 게임 업계가 마주하고 있는 기술적, 기획적 난제에도 조만간 메타버스의 구체적인 실체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막대한 돈이 투입됐다는 사실과 더불어, 생성 AI를 메타버스 구현에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 또한 오늘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니까요.
투자에는 꿈과 현실 사이의 밸런스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 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쫓다보면 현실 감각에서 멀어질 때가 많은 것 같은데요. 그렇기에 지금은 섣부르게 미래를 예측하기보단 업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르게 추적하는 일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머지 않아 블록체인 업계에 메타버스에 대한 컨센서스(Consensus)가 확립되고, 우리에게도 합리적인 투자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