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배출하는 게 아니라 배출된 걸 다시 포집하겠다고? 진짜 바보 아니야?”

(이산화)탄소 포집이라는 개념이 이상한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거창하게 열역학 법칙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 배출된 탄소를 다시 모으는데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탄소 배출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탄소를 포집을 하기 위해 다시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 여러분은 납득이 가시나요?

SK E&S 바로사 가스전의 CCS(탄소저장) 인프라 (출처 = ConocoPhillips, 뉴스펭귄)

물론 저의 짧은 생각과는 반대로 이미 전세계는 탄소 절감에 진심입니다. 가까운 우리나라 회사들 또한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막대한 인프라를 투자 중입니다.

SK E&S는 2021년 3월 호주에 위치한 바로사 LNG 가스전 사업에 지분 37.5%를 투자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300km의 가스관을 통해 호주 본토로 이송되어 액화 처리되는 아주 거대한 시스템이죠.

놀라운 것은 가스 액화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모조리 포집하여 500km 떨어진 폐가스전으로 운송하고 지층에 저장한다는 사실입니다. 한눈에 봐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러한 시스템을 보고 비로소 우리는 기업들과 국가가 얼마나 탄소에 진심인지 눈치챌 수 있습니다.

탄소를 배출하려면 배출권을 사시오

탄소배출권이라는 것이 실체를 갖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작년 중국에서 테슬라가 탄소배출권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는 뉴스를 본적 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탄소배출권은 말 그대로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크레딧)입니다. 누구든 지구를 오염시키고 싶다면 상응하는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이죠.

교토의정서의 주요 골자와 배출권거래제 (출처 = 환경부, 한국환경공단)

탄소배출권의 개념과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는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부속 의정서)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국가별로 탄소 배출의 할당량을 정하고, 할당량을 초과하면 탄소를 적게 배출한 곳에서 배출권을 사오도록 한 일종의 쿼터제인 셈이죠.

교토의정서는 실질적인 감축 목표(38개 참여국이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 5.2% 감축)가 설정된 1차 공약기간(2008-2012년)이 도래하기도 전 미국, 일본, 캐나다, 러시아 등 주요국이 탈퇴하며 실효성 의문을 낳기도 했습니다. 다만 수십 차례에 거친 국가간 협의 끝에 2015년 파리협정이 체결되며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범세계적 정책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탄소배출권

탄소 배출권은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합니다. 한국거래소의 탄소배출권 매매 시스템 (출처 = KRX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다만 탄소배출권을 거래할 수 있는 회원은 한정적으로 개인은 ETF, ETN을 통한 간접투자만 가능한 상황입니다. (출처 = KRX)

탄소배출권도 주식처럼 거래되는 시장이 있고 가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한국거래소에서도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가 시작되었습니다.

탄소배출권은 이름도 다양하고 거래되는 곳도 다양합니다. (출처 = KRX)

탄소배출권은 크게 할당량 시장인지 프로젝트 시장인지에 따라 상품이 구분됩니다. 각 시장에는 각기 다른 이름의 배출권이 존재하고, 해당 상품의 가격 또한 다른 시장의 상품과는 차이를 갖습니다.

  • 할당량 시장:
    국가가 기업에게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할당량을 먼저 줌. 만일 할당량을 초과해 탄소를 배출할 경우 할당량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을 구매해야 함.
    (유럽 매출권거래제도인 EU-ETS의 EUA 배출권이 대표적)
  • 프로젝트 시장:
    기업이 탄소를 자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크레딧. 배출권으로 활용이 가능하여 할당량 시장의 배출권을 보조하는 역할.
할당량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과 프로젝트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은 가격이 다릅니다. 그 외에도 교토(규제)/비교토(자발적) 시장의 구분도 존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양승룡 교수)

결론적으로 배출권은 목표관리제나 탄소세 같은 직접적인 규제가 아닌,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자발적으로 탄소 저감을 유도하는 완충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탄소 중립에 참여하는 주체가 많아질수록 배출권의 값어치는 떨어지고 탄소저감은 어느정도 수준에서 평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꽤나 복잡한 내용이니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자료를 참고 바랍니다👇)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 시장안내 | 배출권시장 소개 | 배출권거래제의 이해

탄소 저감에 진심일수밖에 없는 이유, 탄소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필두로 선진국의 탄소 저감을 위한 제도화가 한창입니다.

특히 EU의 CBAM은 얼마 남지 않은 올해 10월부터 효력을 발휘할 예정입니다. 해당 합의는 탄소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강한 국가로 상품을 수출할 때 사실상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내용입니다.

우선적으로 6개 품목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전력, 비료, 수소 등) 대한 탄소배출량 보고가 의무화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2년 3개월 간 시범사업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규제가 시작되는데요. 주된 내용은 고탄소 상품을 유럽으로 수출할 경우 CBAM 인증서(사실상의 관세)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CBAM 인증서의 가격은 탄소배출권 가격에 연동되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탄소배출량의 산정에는 직접적인 탄소 배출 뿐 아니라 간접분(탄소 직접 배출분 외 열과 전력 만들 때 배출된 탄소)도 포함될 전망으로, 상당히 규제 이행의 난이도가 높아 보입니다.

구체적인 사안들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으나, 철강을 비롯한 우리나라 중심 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느슨한 규제 국가에 관세를, 한국 정부 ‘탄소국경세’ 준비 되어있나
기후위기는 두 개의 얼굴로 온다. 하나는 지구와 이웃을 살리려는 선한 이웃의 얼굴로, 또 하나는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곳간을 채우려는 상인의 얼굴로. 두 얼굴은 뒤섞여 오는 것처럼 보여서 누가 내 선한 이웃인지, 악랄한 장사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기후위기라는 황혼 속에 저 언덕 너머 나타난 것이 내 어여쁜 개인가, 나를 해치러 온 늑대인가.2023년은 기후위기가 무서운 늑대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해다. 지난해 12월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기후 정책이 지구촌 힘겨루기의 중심이 되었다(Climate policy has

탄소 중립 사회를 준비하는 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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